탄생

창립기- (1) 대한생리학회의 탄생

그 당시의 시대적 임무와 사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실천적으로 감당한 의학자들, 특히 기초의학자들은 바로 우리의 자랑스런 선배 생리학자들이었다. 몇 차례의 준비 모임을 가진 뒤, 1945년 11월 30일 조선생리학회는 탄생하였다. 이 땅에 근대의학이 들어온 지 60여년, 근대적 의학교육기관이 세워진 지 40여년, 이갑수 선생 등이 생리학 연구를 시작한 지 20여년만이었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조선의사협회 등 조직 활동의 경험이 풍부한 이갑수 선생을 중심으로 이종륜, 김명선, 이병희, 남기용 등 제1세대 생리학자 15명이 11월 마지막날 금요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소재 이갑수 선생 사택에 모여, 기초의학 학회로는 맨 처음으로 조선생리학회를 창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초대 회장에 이갑수 박사, 부회장에 이종륜 교수(경성대학 및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선임하고 학회다운 학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첫 걸음을 떼었다. 학회 창립 당시 의과대학 또는 의학전문학교로 한반도 남부에 경성대학 의학부(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경성의학전문학교(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광주의학전문학교(현재 전남대학교 의과대학).대구의과대학(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세브란스의과대학(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행림원 의학부(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등 7개 학교가 있었으며, 한반도 북부에는 평양의학전문학교.함흥의학전문학교 등 2개교가 있었던 바, 이 가운데 생리학 교수가 있는 경성대학 의학부.경성의학전문학교.대구의과대학.세브란스의과대학.행림원 의학부 등이 학회 초기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46년 10월 전국의사회를 발족시키기 위한 발기인 대회에 이갑수 회장, 김명선 교수 등이 참석하여 통합총회 주선에 힘썼고, 1947년 5월 10일 조선의학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조선생리학회는 정식으로 의학협회의 회원단체가 되었으며 김명선 교수는 의학협회의 초대 부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선생리학회의 명칭은 '대한생리학회'로 개칭되었다. 대한생리학회는 창립 초기에 다른 학회들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학술대회를 꾸려 나갈 만큼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의학협회가 주관하는 종합학술대회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1957년의 제9회 학술대회부터는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대한의학협회가 주최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부분의 학회가 독자적인 학술대회를 주관.운영하였는데 대한생리학회도 마찬가지였다.